불편한 진실
허지웅 - 대한민국과 군대. txt 본문
한국에서 제일 병적이고 표리부동하며 '남자답다'는 말이 가장 하찮고 잉여롭게 낭비되는, 따지고 보면 한국보다 더 한국적인 세계. 한국의 낭심, 한국의 엑기스.
군대죠.
장성급 이상의 팔할을 전부 불명예 전역시키고 자 이제 그럼 뭘 한 번 해볼까, 나설 수 있는 물리적 상황이면 모를까. 한국의 군대조직은 그 자체로 이미 방 안의 코끼리고 항체가 만들어질 수 없는 바이러스입니다. 병적 위계와 폭력적인 의식체계를 배워나가는 남한 남성의 필수 사회교육기관입니다. 필요에 의한 살인을 가르치는 곳이지요. 젊은이를 애국과 의무의 이름으로 저렴하게 착취하며 병증과 굴종과 비합리로 유지되는 공간이고요. 세상은 한국군대라는 비정상 안에서 정상인으로 잘 버텨내며 그 안의 공기를 폐부 깊숙히 들이 마셔 자기화하는데 성공한 사람을 “사회 생활 잘 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합니다.
부대에서 총기사건이든 뭐든 뭔 일 생길 때마다 관심사병 관심사병 하는데요. 그 거창한 이름과는 달리 관심사병 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사실 한국 군대라는 맥락 안에 있으면서 관심 병사가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건 근대 이후의 세계를 살아나가기에 지나치게 둔감하다는 의미이기도 하지요. 한국 군대에서 간부들이 가장 좋아하는 건 ‘알아서 조용히 잘 굴러가는 것’인데요. 그 밑에서 사병들은 부대를 ‘알아서 조용히 잘 굴러가게’ 하기 위해 자체적인 폭력을 재생산하게 됩니다. 집합시키고 집합당하고 때리고 맞고 억울해하고 억울하게 만들지요. 서로들 말입니다. 요지경이지요? 그런데 그 안에 있으면 그렇게 된답니다.
그렇게 폭력이 순환과 재생산을 거듭하다가요, 거의 필연적으로 결국 눈에 띄게 되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발생하게 됩니다. 소위 '사고'가 나는 거죠. 그런데 말입니다, 이 때 ‘알아서 조용히 잘 굴러가는 것’을 원했던 사람들은 결코 그들을 책임지지 않아요. 절대요. 오히려 남들보다 유별나게 분노하고 와 세상에 이런 끔찍한 일이 다 있느냐 걔들이 원래 부적응자이기는 했는데 어쩌고 저쩌고 뭐 그러면서 책망합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방기하는 가운데, 그렇게 두 명의 관심사병이 만들어집니다.
죽이고 싶은 사람들 사이에서 저렴하게 착취당하는 자들과, 죽이고 싶은 사람이 되어야 조직에 맞게 어른다워지는 것이라 착각할수밖에 없는 자들이라. 슬픈 일입니다. 슬프지 않나요? 한국의 군대는 주변부의 죽음을 끊임없이 상상하고 도발하게 만듭니다. 그곳에 우리는 꾸역꾸역 아들과 형제와 친구들을 밀어넣고 있지요. 남자가 되어 돌아와라, 는 말을 남기면서 말입니다.
한국 군대라는 조직은 대한민국이라는 공간의 축소판입니다. 대체 한국에서 지킬것을 지키고 보고 들을 것을 빼놓지 않아가며 부적응자가, 관심 국민이 되지 않을 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나요? 부적응자 가운데 적응하고 싶지 않고 섞이고 싶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그러나 남들 보다 조금 더 예민하다는 이유로 부적응자라는 낙인을 얻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사건이 생기면 책임을 강요당한다고요. 적응하고 싶다. 섞이고 싶다. 불만을 가지고 싶지 않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게 '이 세상' 아래서 웃는 것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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