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진실
뉴욕 양키스는 선동열을 기억하고 있다, 38년 세월의 장난으로 이제서야 본문
국보급 투수가 미국 메이저리그 최고 명문 구단으로 향한다. 드디어 한솥밥을 먹게 된 레전드와 구단 모두 기대가 크다.
선동열(56) 전 야구대표팀 감독은 11일 목동구장에서 "내년 2월 양키스 구단의 스프링캠프에 참가해 선진 야구를 배우려고 한다"고 밝혔다. 함께 참석한 스티븐 윌슨 양키스 총괄 스카우트는 "이 시대에 한 명 나올까말까 한 레전드 투수가 온다는 것에 대해 구단은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다. 최대한 편의를 제공하려고 준비 중이다"며 환영했다.
오랜 소원이 이뤄졌다. 양키스로 연수를 떠나게 된 선 전 감독은 "한국과 일본 야구를 모두 경험했지만, 미국 야구를 접하지 못했다는 게 콤플렉스로 남아있었다. 어릴 때의 꿈이 이뤄진 것 같다"며 기뻐했다.
양키스 구단은 선 전 감독에게 마이너리그와 메이저리그 등을 두루 살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예정이다. 선수들을 지도할 수도 있고, 현장 지도자 회의와 프런트 회의 등도 경험할 수 있다.
'꿈'을 이룬 것은 양키스도 마찬가지다. 양키스는 오랜 세월 선 전 감독을 지켜봐 왔다. 아직도 선 전 감독에 대한 강렬한 기억이 있을 정도다. 이치훈 양키스 양키스 국제담당스카우트는 "2년 전 구단 미팅에서 'DY SUN' 같은 선수를 뽑아오라고 하더라. 선 전 감독을 칭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양키스는 1981년 제1회 세계청소년대회 직후, 1984년 LA 올림픽 이후 등 두 차례에 걸쳐 선 전 감독에게 스카우트 제의를 했다. 이치훈 스카우트는 "구단 고위층에게 들어보니 1984년 선 전 감독에게 구단에서 계약금 50만달러를 제안했다고 한다. 당시 1차 지명 선수들이 15만, 13만달러를 받은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조건이었다"고 설명했다.
윌슨 총괄 스카우트는 LA 올림픽 당시 캐나다 대표팀으로 참가해 한국과 맞대결을 벌이며 선 전 감독의 피칭을 직접 지켜봤다. 35년이 지난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다. "당시 캐나다의 전력이 좋았는데, 선 전 감독이 선발로 등판해 캐나다 벤치가 침묵에 빠졌었다. '저런 투수가 있었냐'며 엄청 놀랐다"며 "선 전 감독이 굉장히 힘있고, 부드러운 롱토스를 했는데 지금까지도 그런 장면을 못 봤다. 너무 압도적이어서 말로 표현을 할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양키스뿐 아니다. 선동열을 잡기 위해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몇 차례나 관심을 보였다. 1981년 양키스 외에 밀워키 브루어스, LA 다저스가 선 전 감독에 손을 내밀었다. 1984년에는 다저스가 다시 한 번 제안해 오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병역법 때문에 미국 진출은 이뤄지지 않았다. 국제대회 성적으로 병역 혜택을 받은 상태였지만, 병역 혜택을 받은 자는 최소 5년 이상 국내 아마추어 혹은 프로에 기여해야 한다는 규정에 묶였다. 1999년 일본에서 선수 은퇴를 선언한 뒤에도 보스턴 레드삭스의 제의를 받았지만, 여러 사정이 겹쳐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지 못했다.
"안타까웠다. 미국까지 경험을 했다면 나에게도 좋은 경험이 되고, 지도자 생활에도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는 만시지탄이다.
아쉬움을 털어낼 기회가 마침내 왔다. 이치훈 스카우트는 "그동안 일본 선수 출신인 마쓰이 히데키가 양키스에서 초청을 받은 적은 있지만 한국 선수는 선 감독이 처음"이라고 알렸다. 양키스 구단은 "한국과 일본 야구의 장점을 잘 섞으면 더 강한 야구를 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로 선 전 감독을 초청했다.
선 전 감독도 기대가 크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이끌고도 병역 혜택 논란과 관련해 비판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지휘봉을 내려놨던 선 전 감독의 새출발이기도 하다. 선진 야구를 통해 한국 야구에 더 기여를 하고 싶은 마음이다.
선 전 감독은 "장기적인 페넌트레이스에서 선수들을 어떻게 관리하는 지를 배우고 싶다. 또 프런트에서 선수들을 육성하는 것도 공부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투수 파트에서 한계 투구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다. 선수마다 능력이나 체력 등이 다른 상황에서 그 능력을 어떻게 찾아내는지 알고 싶다"고도 했다.
한편 선 감독은 오는 10월 출간을 예정으로 책을 쓰고 있다. "선수 생활부터 45년간 야구를 해왔더라. 후배들이 볼 수 있는 노하우, 경험 등을 담은 야구 경영서적을 준비하고 있다"며 웃었다.
선동열 전 감독 양키스 코치 연수 가나 보군요
코치 보다는 구단 운영을 배우러 가는거 같습니다
...
선동열 감독과 함께 자리한 이치훈 양키스 국제스카우트는 "2년전쯤 구단 미팅에 갔더니 'DY SUN' 같은 선수를 뽑아오라고 이야기하더라. 그때 이야기를 들어보니 1981년도(아마추어 국가대표 시절)에 양키스가 첫번째 입단 오퍼를 했었고, 1984년 LA 올림픽이 끝난 후 계약금 50만달러라는 파격적인 제안으로 두번째 오퍼를 했었다고 한다. 당시 1차지명 선수들이 13만달러, 15만달러를 받았던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조건이었다"고 설명했다.
1981년 당시 양키스 뿐만 아니라 밀워키 브루어스, LA 다저스가 '선동열 잡기'에 나섰고, 1984년 올림픽이 끝난 후에는 양키스와 더불어 다저스가 또다시 거액의 계약금을 내밀며 제안을 해왔다. 하지만 진출은 끝내 불발됐다. 병역 문제 때문이다. 선동열 감독은 국제대회 성적으로 이미 병역 혜택을 받은 상태였지만 당시 병역 혜택을 받은 자는 최소 5년 이상 국내 아마추어 혹은 프로에서 기여를 해야한다는 규정이 발목을 잡았다.
당시를 회상한 선 감독은 "처음 한국화장품에 들어갔던 이유도 미국을 가기 위해서였다. 거기서 시범경기까지 던졌는데, 당시 해태 타이거즈 팬들의 요청이 워낙 강력해서 해태에 입단한 것이었다. 해태에 입단한 후에도 당시에는 FA(자유계약선수) 제도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메이저리그에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11년동안 해태에서 뛰었다. 그 후에는 해외 안보내주면 그냥 은퇴하겠다고 하니 구단에서 일본에 갈 수 있게 해줬다"고 돌아봤다. 재미있는 사실은 당시 해태가 '팬심'을 최우선으로 고려했다는 점이다. 해태 구단이 팬들을 상대로 선동열의 해외 진출과 관련한 설문 조사를 했고, 당시 97%의 팬들이 '찬성'을 한 덕분에 일본 진출이 성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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