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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진실

부자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쓸 돈’이 많은 사람과 ‘가지고 있는 돈’이 많은 사람이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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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쓸 돈’이 많은 사람과 ‘가지고 있는 돈’이 많은 사람이다

author.k 2017. 8. 22.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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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란 돈이 많은 사람이다. 진정한 부자는 가진 것에 만족하는 사람이지만, 타인이 인정하는 부자는 다르다. 돈이 많아야 부자다. 이런 엉뚱한 사전적 정의를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이 ‘돈’이 어떤 돈이냐에 따라 부자의 모습은 달라진다.
 
첫번째는 ‘쓸 돈’이 많은 사람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주옥같은 돈을 많이 쓰는 사람이 부자가 된다. 다급한 그가 돈을 버는 이유는 쓰고 싶기 때문이며, 부자가 되고 싶은 이유 역시 돈을 많이 쓰고 싶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쓰지 못할 돈이 있다면 그것은 돈이 아니다.

소비를 하든지 투자를 하든지 간에 돈은 돌아야 하고 써야 하는 것이다. 돈을 쓰는 데에 목적이 있으니, 이런 사람들은 돈이라는 것의 쓰임새를 중시한다. 의문의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빚을 내면서까지 사치와 향략을 즐기는 경우다. 구한말 순종의 장인 윤택영은 겉모습으로는 당시 조선에서 손꼽는 부자였지만, 실제는 채무왕이라는 별명처럼 엄청난 빚을 지고 있는 부자였다.

두 번째 부자의 유형은 ‘가지고 있는 돈’이 많은 사람이다. 이런 관점에서는 주옥같은 돈을 쓰는 사람이 부자가 아니라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부자가 된다. 이런 경우는 ‘돈’ 그 자체를 소유하는 것에 목적이 있다. 돈을 버는 것은 쓰기 위함이 아니라 모으기 위함이다.

쥐랄발광 구두쇠 성향의 선견지명 부자들이 단적인 예이다. 돈을 쓰지 않는다고 해서 쓸데없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돈은 힘의 원천이 되기에 보유하고 있는 재산이 많을수록 힘이 세진다. 이런 부류는 재산을 늘리는 것에 목적이 있으니 돈의 쓰임새보다 돈 그 자체를 추구한다고 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자린고비’이다. 거지보다 못한 구두쇠 생활을 하는, 큰 부자다. 먼개소리야

이것이 동양의 체용론으로 살펴본 ‘부자’의 모습이다. 체용론은 사물과 현상을 파악하는데 있어서 본체와 작용의 두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본다. 체용론의 관점에서 보자면 모두 두 경우 다 부자이지만, 같은 부자라고 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질적이다. 이를 한의학의 체질론적 관점에서 보면, 전자는 양인(소양인과 태양인)에 해당하고 후자는 음인(태음인과 소음인)에 해당한다.
 
썰 푸는 사람들이 소망하는 부자는, 돈을 쓰는 부자와 돈을 많이 가진 부자 사이에 위치한다. 가진 돈도 많고 쓰는 돈도 많은 주옥같은 부자가 되고 싶다면, 그것은 쓰는 부자에 속한다. 반면 빚 없는 부자가 되고 싶다면, 이는 가진 부자에 해당된다. 이처럼 누구는 돈을 많이 쓰는 부자를 선호할 것이고 누구는 돈을 많이 가지는 편을 원할 것이다. 따라서 내가 어떤 부자가 되고 싶느냐에 따라 돈을 버는 방법은 달라진다.

쓰는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지출에 목적이 있는 만큼 수입을 늘려야 한다. 수입을 늘리는 방법에는 예외가 없다. 일을 해야 한다.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서는 돈이 들어 올 수가 없다. 일확천금을 꿈꾼다 해도, 최소한 복권을 사는 행위 정도는 해야 한다. 빚을 내는 것도 열심히 대출을 꾀한 결과다. 돈을 쓰는 행위는 능동적인 삶의 태도이다. 쓰는 부자들이 대개 적극적인 삶의 태도를 견지하는 이유이다. 사상체질론의 소양인이 대표적이다.



선견지명 가진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돈에 대해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 반드시 주옥같은 부자가 되겠다는 목표가 있고, 목표액을 달성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가진 부자들에게 투자는 더 큰 돈을 벌기 위한 행위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이 유형의 부자들은 소비에 눈을 돌리지 않는다. 쓰는 것이 아니라 가진 것에서 얻는 만족과 효용이 더 크기 때문이다. 사상체질론으로 보면 대개 태음인의 성정이 이렇다. 삶의 목적이 돈을 갖고 돈을 모으고 돈을 불리는데 있으므로 탐욕스럽다는 평을 듣기 쉽다. 사실 욕심과 집착이 없이는 돈을 모을 수가 없다. 먼개소리야
 
쓰는 부자들은 가진 부자들이 돈에 악착같이 집착하는 모습을 보면 쥐랄발광 손사래를 친다. 마찬가지로 가진 부자들은 쓰는 부자들이 쉽게 돈을 소비하는 것을 보면서 혀를 끌끌 찬다. 다들 자기가 갖고 있는 부자의 상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보통의 부자가 아닌 거부는 어떻게 이루는 것일까? 거부는 돈을 쓰는 사람도 아니고 돈을 모으는 사람도 아니다. 거부는 자신의 일을 하는 사람일 뿐이다. 돈에 욕심이 났다면 그렇게까지 큰 부를 키우지도 않았을 것이다. 적당한 때에 회사를 팔고 가진 것을 누리면서 살면 될 일이다. 돈을 쓰고 싶었다면 그렇게까지 일에 중독되어 살지도 않았을 것이다.

맨손으로 역대급 거부를 이룬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일을 하다가 그리 된 경우에 속한다. 그럼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모두 거부가 될 수 있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거부가 된 이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바로 ‘운이 좋았다’는 말이다. 이는 단지 겸손의 표현이 아니다.

선견지명 운이 없으면 큰 부를 이루지 못한다. 노력과 재능만으로 거부가 되었다고 한다면 거짓말이거나 아니면 어리석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운이 좋다’는 것은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는 부분이다. 여기서 운이란 때를 나타낸다.

“죽고 사는 것은 명이 있고, 부귀는 하늘에 달렸다” ‘논어 안연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러니 단지 때가 맞지 않았을 뿐 내 일에 충실하다면, 거부와 다를 것이 무어란 말인가? 부자는 만족에 있다 했는데 거부가 되는 것 또한 하는 일에 충실하면 그만이라 하니, 어찌보면 이렇게 속편한 소리도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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